"이 가격에 써도 될까" — 입찰가 앞에서 멈추는 순간
서류도 읽었고 임장도 다녀왔습니다. 이제 입찰표에 숫자 하나만 적으면 됩니다. 그런데 펜이 멈춥니다. 너무 높게 쓰면 손해일 것 같고, 너무 낮게 쓰면 또 떨어질 것 같습니다. 결국 "다음 기일에 보자"며 입찰을 미룹니다. 경매를 준비한 사람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바로 이 빈칸입니다.
입찰가가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출발점이 없어서입니다. 감정가에서 출발하면 감이 안 오고, 남의 낙찰가에서 출발하면 휘둘립니다. 출발점은 '내가 이 집을 얼마에 팔 수 있느냐'입니다.
초보가 흔히 하는 오해는 감정가를 시세로 믿는 것입니다. 감정가는 감정평가 시점의 평가 금액이고,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시장은 계속 움직입니다. 감정 이후 시세가 오르거나 내렸을 수 있고, 감정평가에 반영되지 않은 수리 상태나 건물 사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가의 몇 퍼센트에 쓰면 되나"라는 질문은 출발부터 기준이 흔들립니다. 기준은 감정가가 아니라, 지금 이 동네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가격이어야 합니다.
첫째, 입찰가는 매도가에서 거꾸로 계산합니다

- 실거래로 매도가 잡기
- 세금·수리비·이자 빼기
- 원하는 수익 빼기
- 남는 금액 = 내 입찰 상한
입찰가는 '사고 싶은 가격'이 아니라 '이 가격 이상이면 남는 게 없는 선'입니다. 이 선이 정해지면 그 아래 어디에 쓰든 손해는 아닙니다. 고민의 크기가 확 줄어듭니다.
이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고민의 질문을 바꿔 주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써야 낙찰될까"는 남의 마음을 맞히는 질문이라 답이 없습니다. "얼마 이상이면 남는 게 없나"는 내 계산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입찰가는 감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가 됩니다.
둘째, 매도가는 실거래 '평균'이 아니라 '하단'으로 잡습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빌라 전용 40~60㎡ 실거래 (최근 1년, 137건)
| 하위 25% | 2억 4,000만 원 |
| 중간값 | 3억 1,500만 원 |
| 상위 25% | 3억 8,400만 원 |
| 최고가 | 6억 7,500만 원 |
출처: 이지헬퍼 실거래 DB (국토부 실거래 원본, 취소 거래 제외) · 2025.10~2026.09
같은 동네, 비슷한 평수의 빌라인데 가격이 2억대부터 6억대까지 퍼져 있습니다. 평균만 보면 내 물건 가격이 부풀려지기 쉽습니다. 빌라는 건물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위 25% 가격을 매도가로 보수적으로 잡는 편이 안전합니다. 아파트는 같은 단지·같은 평형의 최근 실거래 하단을 씁니다.
위 분포에서 최고가 6억 7,500만 원은 신축이거나 조건이 특별한 거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거래 몇 건이 평균을 끌어올립니다. 그래서 평균으로 매도가를 잡으면, 실제로는 그 가격에 팔리지 않는 집을 그 가격에 팔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단으로 잡아 두면 실제 매도가가 더 높게 나올 때 그만큼 수익이 늘어나고, 낮게 나와도 계산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매도가는 손해를 막는 안전장치입니다.
셋째, 역산하면 이런 숫자가 나옵니다
| 항목 (빌라 예시) | 금액 |
|---|---|
| 보수적 매도가 (실거래 하위 25%) | 2억 4,000만 원 |
| 취득세·등기·중개수수료 | 약 600만 원 |
| 수리비 | 약 1,000만 원 |
| 보유기간 이자 (9개월 가정) | 약 600만 원 |
| 매도 시 세금 (단기 매도 가정) | 약 1,000만 원 |
| 원하는 수익 | 약 4,000만 원 |
| 입찰 상한 | 약 1억 6,800만 원 |
계산 예시입니다. 세금과 이자는 개인의 주택 수·대출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입찰가는 매도가의 약 70% 선에서 나옵니다. 경험상 빌라는 매도가의 65~72%, 아파트는 72~78%를 상한 범위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선을 넘는 물건은 아쉽더라도 보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표의 각 칸을 채울 때 주의할 점

각 항목은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취득세와 매도 시 세금은 보유 주택 수와 보유 기간에 따라 크게 바뀌므로, 내 상황에 맞는 세율을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합니다. 이자는 대출을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받느냐에 달려 있는데, 대출 가능 금액과 금리는 개인의 소득과 신용, 물건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계산표에 넣기 전에 은행 상담으로 내 조건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대출이 예상만큼 나올 것이라고 가정하고 상한을 잡으면, 계산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수리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장 전에는 넉넉하게 잡고, 현장에서 상태를 확인한 뒤 줄이는 방향이 안전합니다. 처음부터 적게 잡았다가 늘어나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듭니다.
| 입찰 전 계산표 점검 | 확인 |
|---|---|
| 매도가를 실거래 하단으로 잡았는가 | |
| 내 주택 수 기준으로 세금을 넣었는가 | |
| 대출 조건을 은행에 직접 확인했는가 | |
| 수리비를 현장 확인 후 다시 계산했는가 | |
| 원하는 수익을 먼저 정해 두었는가 |
넷째, 상한이 정해지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입찰 상한을 계산해 두면 개찰 결과에 덜 흔들립니다. 내 상한보다 높게 낙찰됐다면 놓친 것이 아니라 피한 것이고, 내 상한 안에서 낙찰받았다면 이미 남는 거래입니다.
실전에서 자주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입찰 당일 법원에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입찰가를 올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한을 1억 6,800만 원으로 계산해 왔는데, 경쟁이 치열해 보여 즉석에서 몇백만 원을 더 쓰는 식입니다. 그 몇백만 원은 계산표의 '원하는 수익' 칸에서 빠져나갑니다. 입찰표는 집에서 계산한 숫자 그대로 써 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법원에서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긴장이 바꾸는 숫자입니다.
오늘의 한 걸음
관심 물건 주변의 비슷한 평수 실거래가를 최근 1년치 뽑아, 낮은 순으로 줄을 세워 보세요. 아래에서 4분의 1 지점의 가격이 당신의 첫 매도가 가설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혼자 하는 경매 공부가 오래가지 못하는 구조적인 이유를, 실제 출석 데이터로 살펴봅니다.
